'꿈 보다 해몽이 더 좋다'는 말이 있듯이
제 생각으로는
문태준 시인이 쓴 '시 노트'가 더욱 기가 막히군요.

어른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될 때가 많다.
주름살 사이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짧고 두서없이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말이지만
마늘처럼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머니가 무심코 던진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
허리가 아픈 어머니는 앉아 쉴 곳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어디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허리를 펴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가 심상찮은 것은 의자를 내놓을 데를 태연 무심하게
열거하는 어머니의 품 큰 생각에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꽃과 열매와 참외밭과
호박과 망자(亡者)에게도
의자를 내주어야 한다는 그 우주적인 마음 씀씀이에 있다.
공생과 배려에 기초한 이런 모성적 마음씨는
식구를 다 거둬가며 밥을 먹여온 삶의 연륜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누가 인생을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것이라고
먹줄을 대듯 명쾌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정록(47) 시인의 시에는 모자(母子)가 자주 등장한다.
시 '꽃벼슬'에서는 한식 날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모자가 찾아간다.
아들은 무덤에 난 쥐구멍에다 꽃다발을 꽂아드린다.
"꽃밥 한 그릇 바치는 것이다".
어머니는 쥐구멍에 술잔을 따르며
"새끼들이 술 갖고 올 줄 알고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구나"라고 익살맞게 말씀하신다.
아들이 "무덤 안에서 뭔 소리 들려요"라고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는 농(弄)으로
"그랴 니 불알 많이 컸다고 그런다"라시며
"아예 술병을 쥐구멍에 박아놓는다".
(모자 사이에 오가는 이 능청능청한 대화여.....)
이정록 시인의 시는 이처럼 곰살가운
살내가 수북하니 풍긴다.
그의 시를 읽으면 옷 벗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사랑은 울컥이란 짐승의 둥우리"라고 말하는 그는
안간힘을 쓰며 사는, 몸살 앓는 사람들의
머리맡으로 가 슬그머니 앉는다.
식은땀을 흘리는 자식의 머리맡에서
차가운 물수건을 들고 꼬박 밤을 새던 어머니처럼.
그는 시와 삶의 거리를 18.44미터라고 말한다.
(18.44미터는 투수판에서 홈 플레이트까지의 거리이다.)
18.44미터가 곧
"너와 나,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의 거리"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의 시는 삶을 정면으로 팽팽하게 응시한다.
삶에 근거해 삶의 현장에서 그의 시는 발발한다.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
('좋은 술집')이라고 말하는 시인.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공짜 술도 나눠주고
봉지 쌀도 나눠주고 싶다는 시인.
그는 소년교도소에 가서 한문을 가르치기도 하는
천안 중앙고등학교 교사이다. /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