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 문학 및 좋은 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어령

Veronica Kim 2007. 10. 30. 07:07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이 어령    

   

 

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사람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별 사탕이나 혹은 풍선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게 높이 날아갈 수는 없습니다.
너무 얇아서 작은 바람에도 찢기고 마는 까닭입니다.

바람개비를 만들 수는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보셨지요, 하나님
바람이 불 때를 기다리다가
풍선을 손에 든 채로 잠든 유원지의 아이들 말입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
그리고 저 별을 만드실 때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고통을 느끼시지는 않으셨는지요.

아!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코피보다 진한 후회와 발톱보다도 더 무감각한
망각 속에서 괴로워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떨리는 몸짓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 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가슴속 암흑의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가장 향기로운 초원에 
      구름처럼 희고 탐스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길러 
         모든 사람이 잠든 틈에 
           내 가난한 제단을 꾸미겠나이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문학 > 시 문학 및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별노래  (0) 2007.11.05
삶의 태도  (0) 2007.11.04
시간  (0) 2007.10.15
살라,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 인 것 처럼  (0) 2007.10.02
Audrey Hepburn's poem  (0) 2007.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