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반 고흐의 꽃의 모든것
글....류시화님의 시
사랑과 슬픔의 만다라
너는 내 최초의 현주소 늙은 우편 배달부가 두들기는 첫번째 집 시작 노트의 첫장에 시의 첫문장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시는 너를 위한 것 다른 사람들은 너를 너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너를 너라고 부르지 않는다 너는 내 마음 너는 내 입 안에서 밤을 지샌 혀 너는 내 안의 수많은 나
정오의 슬픔 위에 새들이 찧어대는 입방아 위에 너의 손을 얹어다오 물고기처럼 달아나기만 하는 생 위에 고독한 내 눈썹 위에 너의 손을 얹어다오
나는 너에게로 가서 죽으리라 내가 그걸 원하니까 나는 늙음으로 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바닷새처럼 해변의 모래 구멍에서 고뇌의 생각들을 파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내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내가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넌 알몸으로 내 앞에 서 있다
내게 말해다오 네가 알고 있는 비밀을 어린 바닷게들의 눈속임을 순간의 삶을 버린 빈 조개가 모래 속에 감추고 있는 비밀을 그러면 나는 너에게로 가서 죽으리라 나의 시는 너를 위한 것 다만 너를 위한 것
새와 나무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바람 부는 날의 풀
바람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 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내 안의 물고기 한 마리
나는 내 안에 물고기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물고기는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안의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때로는 날개 없이 하늘을 날기도 한다 물이 부족하면 나는 물을 마신다. 내 안의 물고기를 위해. 내가 춤을 추면 물고기도 춤을 춘다. 내가 슬플 때 물고기는 돌틈에 숨어 눈을 깜박이지도 않은 채 나를 응시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나 자신으로부터는 달아날 수 없는 거. 날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안의 물고기를 행복하게 하는 일. 나는 내 안에 행복한 한 마리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
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버릴수 있다면
누가 말했었다. 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강에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면 고통도 그리움도 추억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꽃들은 왜 빨리 피었다 지는가. 흰 구름은 왜 빨리 모였다가 빨리 흩어져 가는가.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가 너무도 빨리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것들.
들꽃들은 왜 한적한 곳에서 그리도 빨리 피었다 지는것인가. 강물은 왜 작은 돌들 위로 물살져 흘러 내리고 마음은 왜 나자신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가.
자살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세 월
강물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홀로 앉아 있을 때 강물이 소리내어 오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그대를 만나 내 몸을 바치면서 나는 강물보다 더 크게 울었네 강물은 저를 바다에 잃어 버리는 슬픔에 울고 나는 그대를 잃어버리는 슬픔에 울었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먼저 가보았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그 서러운 울음을 나는 보았네 배들도 눈물 어린 등불을 켜고 차마 갈대숲을 빠르게 떠나지 못했네.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너였구나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것이 인기척에 부스럭거려서 여우처럼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슬픔, 너였구나 나는 이 길을 조용히 지나가려 했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이 겨울숲을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를 깨우고 말았구나 내가 탄 말도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숲 사이 작은 강물도 울음을 죽이고 잎들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여기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한때 이곳에 울려퍼지던 메아리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는 흰새의 날개들 같던 그 눈부심은 박수치며 날아오르던 그 세월들은 너였구나 이 길 처음부터 나를 따라오던 것이 서리 묻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까마귀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 너였구나 나는 그냥 지나가려 했었다 서둘러 말을 이 겨울숲과 작별하려 했었다 그런데 그만 너에게 들키고 말았구나 슬픔, 너였구나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시월의 빛 위로 곤충들이 만들어 놓은 투명한 탑 위로 이슬 얹힌 거미줄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가을 나비들의 날개짓 첫눈 속에 파묻힌 생각들 지켜지지 못한 그 많은 약속들 위로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한때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 나는 삶을 불태우고 싶었다 다른 모든 것이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릴 때까지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빨리 내게서 멀어졌는가
사랑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여기, 거기, 그리고 모든 곳에 멀리, 언제나 더 멀리에 말해 봐 이 모든 것을 위로 넌 아직도 내 생각을 하고 있는가
여섯줄의 시
너의 눈에 나의 눈을 묻고 너의 입술에 나의 입술을 묻고 너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묻고
말하렴, 오랫동안 망설여 왔던 말을 말하렴, 네 가슴 속에 숨은 진실을 말하렴, 침묵의 언어로 말하렴
구름은 비를 데리고
바람은 물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새는 벌레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구름은 또 비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나는 삶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달팽이는 저의 집을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백조는 언 호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어린 바닷게는 또 바다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아, 나는 나를 데리고 자꾸만 어디로 가고 있는가
빈 강에 서서
날마다 바람이 불었지. 내가 날리던 그리움의 연은 항시 강 어귀의 허리 굽은 하늘가에 걸려 있었고 그대의 한숨처럼 빈 강에 안개가 깔릴 때면 조용히 지워지는 수평선과 함께 돌아서던 그대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올랐지. 저무는 강, 그 강을 마주하고 있으며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목숨처럼 부는, 목숨처럼 부대끼는 기억들뿐이었지.
미명이다. 신음처럼 들려오는 잡풀들 숨소리 어둠이 뒷모습을 보이면 강바람을 잡고 일어나 가난을 밝히는 새벽 풍경들. 항시 홀로 떠오르는 입산금지의 산영(山影)이 외롭고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슬픔의 시작이었지.
다시 저녁. 무엇일까 무엇일까 죽음보다 고된 하루를 마련하며 단단하게 우리를 거머쥐는 어둠, 어둠을 풀어놓으며 저물기 시작한 강, 흘러온 지 오래인 우리의 사랑, 맑은 물 샘솟던 애초의 그곳으로 돌이킬 수 없이 우리의 사랑도 이처럼 저물어야만 하는가 긴 시를 끝의 마지막 인사를 끝내 준비해야만 하는가.
바람이 불었다. 나를 흔들고 지나가던 모든 것은 바람이다. 그대 또한 사랑이 아니라 바람이다. 강가의 밤, 그 밤의 끝을 돌아와 불면 끝의 코피를 쏟으며 선혈이 낭자하게 움트는 저 새벽 여명까지도 바람이다. 내 앞에선 바람 아닌 게 없다. 그대여......
누구든 떠나갈 때는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날이 흐린 날을 피해서 가자 봄이 아니라도 저 빛 눈부셔 하며 가자
누구든 떠나갈 때는 우리 함께 부르던 노래 우리 나누었던 말 강에 버리고 가자 그 말과 노래 세상을 적시도록
때로 용서하지 못하고 작별의 말조차 잊은 채로 우리는 떠나왔네 한번 떠나온 길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네
누구든 떠나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가자 지는 해 노을 속에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잊으며 가자
눈물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 듯 노오란 민들레 몇 점 피어 있는 듯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민들레밭에 내가 두 팔 벌리고 누워 있다 눈썹 끝에 민들레 풀씨 같은 눈물을 매달고서 눈을 깜박이면 그냥 날아갈 것만 같은
저편언덕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 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이별법
사랑이 오실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한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비록 우리 사랑이 녹아내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해도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그 기억만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이 사랑
그대가 주었던 슬픔은 모두 잊고
추억의 상자에서 꺼내어
아름다웠노라, 지극히도 아름다웠노라
회상할 수 있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우리 사랑이 이별로 남게 되어
지금은 견디기 힘든 아픔뿐일지라도
사랑이 오실 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그대를 떠나보냅니다
헤어지는 지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네가 나에게 왔다.
잠긴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내 영혼의 숨결에
수 놓은 너의 혼...
나는 너로 인해 새로워지고
너로 인해 행복했다.
그리고 나 살아있는 동안
너로 인해 행복 할 것이다.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여기에 둥근 기둥이 있어 아무도 그것을 둘러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흙 위에 솟아나온 뿌리가 있어 그것은 방향 없는 눈 아무것도 아닌 것
발에 채인다 여기 모든 흐름을 멈추게 하는 것 빛을 갉아먹는 황금색 벌레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새삼 사랑을 공개할 필요는 없으리라 눈 위에 눈 위의 감시자들에게 새삼 나의 애인을 들추어 낼 까닭은 없다 여기 하늘에서는 조용히 구름이 날고 이미 이전에 왔던 이가 또 소리친다 이제 곧 종말이 오리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우리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있음을 안다 눈 속의 감자들, 감자의 죽은 눈들
우리는 소리 없이, 줄지어 검은 나무들 아래로 지나간다 안개, 기둥들, 들리지 않는 소리들 한때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것들, 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여기에 멈추지 않는 흐름이 있어 우리와 함께 지나간다 소리지른다, 언제나 들리는 소리들 여기에 우리가 서 있어 아무도 우리를 구속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찬란한 기둥들이 서 있어 아무것도 우리의 찬양을 받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소금별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 별이 녹아 버리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이네
소금 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속눈썹
너의 긴 숙눈썹이 되고 싶어
그 눈으로 너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네가 눈물 흘릴 때
가장 먼저 젖고
그리움으로 한숨지울 때
그 그리움으로 떨고 싶어
언제나 너와 함께
아침을 열고 밤을 닫고 싶어
삶에 지쳤을 때는
너의 눈을 버리고 싶어
그리고 너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속의 물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입술 속의 새
내 입술 속의 새는 너의 입맞춤으로 숨막혀 죽기를 원한다
내가 찾는 것은 너의 입술 그 입술 속의 새 길고 긴 입맞춤으로 숨 막혀 죽는 새 나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너를 껴안는다 내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삶은 다만 그림자 실낱 같은 여름 태양 아래 어른거리는 하나의 환영 그리고 얼마큼의 몸짓 그것이 전부 나는 고통 없는 세계를 꿈꾸진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내가 찾는 것은 너의 입술 단 한번의 입맞춤으로 입술 속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숨 막혀 죽는 새 밤이면 나는 너를 껴안고 잠이 든다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온 몸으로 너를 껴안고 내 모든 걸 잊기 위해
들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