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한국 및 동양 미술

국내 최고가 그림 그리는 화가, 홍경택

Veronica Kim 2008. 10. 28. 15:54

 

그가 말한다. “나는 한 땀의 여백도 없는, 피땀 서린 그림이 좋다!”
국내 최고가 그림 그리는 화가, 홍경택
미술계에서 통용되는 그의 애칭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록의 사나이’, 또 하나는 ‘크리스티가 주목한 화가’. 지난 5월 24일 열린 홍콩 크리스티 이브닝 경매에서 그의 작품‘도서관 Ⅱ’가 6억 3000만 원에 팔렸다. 물론 함께 나온 국내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였다.
그가 미술계의 스타가 된 것은 최근 2~3년의 일이다. ‘사건’은 작년에 터졌다. 5월에 열린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현대 미술 경매. 그의 대표작 ‘연필 1’이 추정가의 10배인 7억8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그는 국내 생존 작가 중 최고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등극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터진 홈런. 홍경택은 작년의 ‘사건’이 사고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3층짜리 낡은 교회 건물에 자리한 스타의 작업실은 작고 허름했지만 따스하고 정겨웠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5~6명의 제자가 집중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홍경택은 그들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그림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틀리에 분위기는 ‘수장’의 성격과 직접 연결되기 마련인데 술도 담배도 하지 않고, 주인도 없이 배곯는 것이 안쓰러워 다섯 마리가 넘는 개를 주워다 키우고, 2000장이 넘는 CD와 LP가 있을 만큼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화가가 수장인 공간은 뾰족하려야 뾰족할 수 없는 분위기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또 한 번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그는 더없이 바빠졌다. 인터뷰를 하는 중간 중간에도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다. 수줍음 많고 예의 바른 40대 초반의 화가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작은 목소리로 통화하고 다시 의자에 앉는다. 그의 작품이 외국에서 더 환영받는 이유는 한국적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흔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거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적인 그림은 어쩔 수 없이 소통의 결함을 지닌다. 6억3000만 원에 낙찰된 ‘도서관 Ⅱ’를 보자. 선명한 색상의 책 수만 권이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빽빽하게 쌓여 있고, 그 한가운데 신탁 분위기의 나무 진열대가 놓여 있다. 그 진열대에는 벌거벗은 채 음경을 가린 6명의 남성과 머리카락 휘날리는 비너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상징처럼 놓여 있다. 어디에서도 한국적 이미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컬러의 폭발 속에 화가 자신의 사유 세계가 견고한 성처럼 자리하는 느낌이다. 홍경택은 “나의 신전으로의 초대”라는 한 마디로 그림에 투영된 뒷이야기를 집약해 설명한다.

1 ‘도서관Ⅱ’ 227×181cm. 1995~2001년 연작 시리즈 중 하나다.


2 ‘연필Pens I’ 259×581cm.

한국인보다 외국인에게 더 잘 ‘팔리는’ 이유를 화가는 이렇게 추정한다. “외국인이 원하는 것이 동양적인 것만은 확실해요. 다만, 저는 그 동양적인 것과 익숙하지 못해요. 마돈나와 비틀스의 팝송을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데이비드 린치의 B 무비에 열광했죠.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려 유럽?인도?미국?티베트?네팔을 여행했고, 미국 미술계의 톱스타인 매슈 바니Matthew Barney의 작품에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동시대의 젊은이들이 갖는 국제적 정서를 저 또한 갖고 있는 것이죠. 외국인이 제 작품을 관심 있게 보는 이유도 아마 공통된 감수성에서 느끼는 편안함 혹은 동질감 같은 것이 아닐까 해요. 얘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동양에 동양적인 작품만 넘쳐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신기함도 작용했을 테고요.”

세심함과 집착이 거둔 성공
하지만 동시대적인 감각과 사상이 그림에 드러난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상한가를 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이 높은 점수를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수학 공식이라도 적용해 그린 듯한 극단적 정교함 때문이다. 여기 소개한 ‘연필 1’, ‘도서관 Ⅱ’에서도 그 편집증에 가까운 완벽은 도드라진다. 수천 개, 수만 개의 연필과 책은 ‘극사실주의’의 전형이라 할 만큼 정교하고, 하나하나의 연필과 책은 큰 틀 안에서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거기에 형광색 페인트를 통째로 쏟아 부은 듯 그림 전면에 입힌 발광색은 연필 하나하나, 책 한 권 한 권에 춤추는 듯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화가의 노고와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와, 정말 힘들게 그렸겠구나” 하는 감상 평이 절로 나온다. 홍경택은 “진짜 그림(화가의 노고 측면에서)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완전무결한 그림에 집착하는 편이에요. 깨지지 않고, 꽉 짜인 견고한 구성을 좋아하죠. 이러한 특징은 지금 작업하고 있는 그림들에서 더욱 두드러져요. 수만 개의 물방울, 동그라미 같은 무늬가 상하 좌우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죠. 그리고 그 중앙에는 제가 좋아하는, 이를테면 교황이라든지 마돈나라든지 이상은이 들어가고요. 세상에 회자되는 ‘별’들의 삶 역시 그렇잖아요. 화려하고 견고하죠. 저는 피땀이 서린 그림을 좋아해요.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림은 싫어요. 그래서 100호 사이즈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ㅇ자 하나 들어갈 만한 여백을 만들지 않아요. 현란한 색채에도 열광하죠. 사이키델릭한. 어차피 미술은 시각적인 것이므로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극도로 정교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오는 9월 있을 개인전을 앞두고 벌써 5kg이나 몸무게가 줄었다. 화가는 일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몇 날 몇 달이고 잠을 설친다.

3 지금 작업 중인 작품.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현란한 무늬가 인상적이다.

그에게도 불운한 시절은 있었다. 200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고대하던 첫 전시회를 열었지만 작품은 단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그 뒤 몇 차례 개인전을 열었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가락에 꼽을 만큼 소수의 사람만이 가뭄에 콩 나듯 작품을 구매했을 뿐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그 놀라운 예지력과 더불어 스타 작가의 작품을 소유한 ‘부자’가 되었다. 이 사실은 동시대의 화가와 컬렉터 모두에게 같은 교훈을 남긴다. “후배 화가들에게 자기 자리를 지키라고 말하고 싶어요. 미술계와 평단의 평가가 어떻든 자신의 세계를 견고히 해야 해요. 견고하지 않으면 그 성은 언제든 쉽게 허물어지죠. 컬렉터들 또한 자신을 믿어야 해요. 남의 말을 들으면 안 돼요. 왜 주식도 그렇잖아요. 전문가들이 옆에서 조언한다고 해서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홍경택은 진짜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생업으로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작가’란 칭호를 기꺼이 붙일 만한. 바로 그 욕심 때문에 그는 오늘도 현미경으로 본 눈의 결정처럼 완벽하고 그래픽적인 그림을 고집한다.

4 홍경택은 다분히 세심하고 예민하되 온화하고 유순하다.

홍경택은 1968년생으로 경원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2000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몇 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으나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한 미술 월간지는 한국의 주요 비평가와 기획자를 대상으로 ‘한국의 차세대 미술가’를 물었는데 홍경택은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연필’. ‘도서관’, ‘휑케스트라’ 시리즈로 유명하며 극사실주의, 팝 아트가 혼재된 독창적 그림으로 세계 미술 시장에 어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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