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연금 개인전
'산죽(山竹) - 오후'
이미지 9129 - 산죽(山竹) -오후. Oil on canvas. 15P. 2007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작가상세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 1553 - 산죽(山竹)-오후. Oil on canvas. 10P. 2007
山竹 같은 화가 복연금
화폭 위에 댓잎 서걱거리는 바람이 인다. 푸른 바람이 분다. 뒷산 솔밭 사이를 휘돌아 내려온 바람에 뒤꼍의 山竹들이 몸을 떤다. 고향이다. 어머니 손 떼 묻은 장독대, 흙담, 완만하고 비스듬한 야산, 잡목 우거진 숲과 계곡이 있는 고향이다. 화폭 속의 고향은 단지 복연금 화가만의 고향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고향은 지도상의 어느 곳이라기보다는 마음이 뿌리내린 곳이다. 식물에게만 뿌리가 있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도 뿌리가 있다. 이사를 해보면 우리도 나무처럼 뿌리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무가 '분갈이 몸살'을 하는 것처럼, 사람도 '이사 몸살'을 한다. 고향은 아무리 멀리 이사를 해도 늘 따라다니는 화분 같은 것이다. 죽는 날까지 갈아치울 수 없는 화분이 곧 고향이다.
이미지 6815 - 산죽(山竹)-오후. Oil on canvas. 15P.2007
복연금은 故鄕, 특히 오후의 故鄕을 즐겨 그린다. 고향이 그런 것처럼, 복연금의 그림 세계는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굽이굽이 둥글고 완만하다. 편안하다. 무거운 짐 다 부려놓고 편히 쉬게 하는 어머니 품 안 같은 너그러움이 묻어난다. 대나무를 그려도 헌칠한 신수의 꼿꼿함을 뽐내는 왕대가 아니라, 야산 바위틈에 오밀조밀 등을 부대끼며 존재를 영위하는 山竹이다.
생각해 보면, 복연금은 山竹같은 화가다. 山竹은 雜草 같은 대나무다. 알다시피 山竹은 누가 애써 가꾸는 화초가 아니다. 야산 바위틈에 저절로 나서 숲을 이루어 서로 몸을 섞어 사는 질긴 생명의 풀이다.
이미지 8404 - 산죽(山竹)-오후.Oil on canvas. 50F.2007
느리지만 차곡차곡 삶의 연륜을 안으로 키워 가는 山竹처럼, 복연금은 '바깥'보다는 '안', '꽃'보다는 '뿌리'에 천착한다.
복연금의 '竹'은, 그림이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노래가 그렇고 시가 그런 것처럼, 그림은 곧 삶이다. 복연금의 '竹'이 그렇다. 카타르시스가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마침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것들에 천착하는 복연금의 노력이 아름답다.
< 이거룡/ 작가.교수, >
이미지 7788 - 산죽(山竹)-오후.Oil on canvas.20P.2007
[작가노트]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러고 사철을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를 통해 대나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노래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사군자 중에서도 대나무를 제일로 꼽았다. 그래서 사군자중 대나무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가장 많이 지었다.
이미지 3730 - 산죽(山竹) -오후.Oil on canvas.10P. 2007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고, 절대 휘지 않아 연함이 단단함을 이기는 법을 가르친 대나무. 곧고 굳음이 숭고한 선비정신을 상징하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오른 모습이 장부의 늠름한 기백을 보여준다.
또한 빈 속은 세상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라는 뜻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자신이 머무는 집, 서원, 누각 등지에 대나무를 심어 자신의 게으름을 살피고 세찬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대쪽같은 기개를 배웠다.
이미지 산죽3 - 산죽(山竹)-오후.Oil on canvas.15P.2007
이처럼 대나무가 가진 깊고 숭고한 정신은 푸른 하늘만큼이나 넓고 아름답다.
겨울산행중에 만난 산죽은 정말 그 느낌이 신선하고 색달랐다. 빼어난 조형성이 주는 잎의 생김새와 사철 변하지 않는 그 푸르름이 나의 온 마음을 흡수해 버렸다.
산죽이 표출해 내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미지는 일순간의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 복연금 -
이미지 산죽4 - 산죽(山竹)-오후.Oil on canvas.10P.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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