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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박이환 시, 이진섭 작곡, 박인희 노래

Veronica Kim 2011. 11. 11. 10:18

       

 


 

 

 

 

 

          

           이 시(詩)에 얽힌 이야기

표면적으로 전쟁을 상기시켜주는 말이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시는 흔히 전쟁과 무관한 소녀적 감상주의의 시라고 생각되곤 한다.

그러나 이 시의 바탕에는 전쟁의 상처와 상실감이 진하게 깔려 있는 시이다.

이 시가 전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박인환으로 하여금 명동황제라는 별칭을 갖게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전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잃어버린 사랑과 되찾을 수 없는 과거를 생각케 하고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 시에 대하여 강계순은 평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아! 박인환, 문학예술사, 1983. pp. 168-171)
1956년 이른 봄 저녁 경상도집에 모여 앉은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부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햇다. 그 시를 넘겨다 보고 있던 이진섭도 그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 흥얼 콧노래로 그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깨어진 유리창과 목로주점과도 같은 초라한 술집에서 즉흥적으로 탄생한 것이

오늘까지 너무나도 유명하게 불려지고 있는 「세월이 가면」이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정식으로 다듬어서 불러,

길 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드는 기상천외의 리사이틀이 열렸다.
마른 명태를 앞에다 놓고 대포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많은 행인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은 순식간에 명동에 퍼졌다. 그들은 이 노래를 명동 엘리지라고 불렀고

마치 명동의 골목마다 스며 있는 외로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듯 이곳 저곳에서 이 노래는 불리어졌다.


이 「세월이 가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애절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십년이 넘도록 방치해 두었던 그의 첫사랑의 애인이 묻혀 있는 망우리 묘지에 다녀왔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도, 시도, 생활도 차근 차근 정리하면서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먼 애인의 눈동자와 입술이 나뭇잎에 덮여서 흙이 된 그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순결한 꿈으로 부풀었던 그의 청년기에 아름다운 무지개처럼 떠서 영원히 가슴에 남아있는 것,

어떤 고통으로도 퇴색되지 않고 있던 젊은 날의 추억은 그가 막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을 때

다시 한번 그 아름다운 빛깔로 그의 가슴을 채웠으리라.


그는 마지막으로, 영원히 마지막이 될 길을 가면서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곁에서 떠나간 연인의 무덤에

작별을 고하고 은밀히 얘기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