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Classical Music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Veronica Kim 2012. 8. 24. 10:52

Schubert, Wanderer Fantasy in C major D.760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Maurizio Pollini, piano

1974 Recording

Deutsche Grammophon

Complete

*각 악장은 아래 악장 해설에 두었습니다.

1820년경부터 1822년 가을 사이 슈베르트는 기악을 위한 대규모 작품 몇 편을 수차례에 걸쳐 작곡했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이 시기에 작곡을 시작했다가 완성하지 못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미완성 교향곡>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그는 네 악장의 소나타 형식에 확장된 주제의 변용을 꿈꾸고 있었다. 이러한 교착 상태를 승리로 이끈 작품이 바로 <방랑자 환상곡>이다.

 

Sviatoslav Richter plays Schubert 'Wanderer Fantasy'

1. Allegro con fuoco ma non troppo

2. Adagio

3. Presto & 4. Allegro

 

긍정의 힘이 넘쳐흐르는 역동적 활기

1822년 11월에 작곡, 1823년 카펠리와 디아벨리에 의해 출판된 <방랑자 환상곡>은 20대의 슈베르트의 원대한 꿈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급진적인, 혹은 예언적인 측면(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나 슈만의 환상곡을 예견하는)이 다분한 이 작품은 긍정의 힘이 넘치는 작품으로서(악마적인 힘과는 사뭇 다른 에너지), 네 개의 악장에 걸쳐 단일 주제가 순환형식으로 배치되며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낀 산 위의 방랑자>, 1818

슈베르트가 이 환상곡을 완성하는 데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부유층 인사인 엠마누엘 폰 리벤베르크 드 치시틴의 후원과 위촉이 강한 영향을 끼쳤다. 훔멜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던 리벤베르크는 앞뒤 악장에서 보다 폭발적이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백을 갖춘 외향적인 작품을 위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작곡가는 이러한 요청에 적지 않게 당황했음이 마지막 푸가 악장에서 분명하게 나타는데, 그의 친구인 레오폴트 쿠펠바이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슈베르트가 환상곡을 한 번 들었는데... 마지막 악장에서 난관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따위 작품은 악마나 연주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의 제목은 그가 1816년에 작곡한 리트인 <방랑자> D.49-3의 몇몇 주제를 아주 짧게나마 직접적으로 차용한 것에서 연유했다. 처음에는 ‘불행한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작곡했으나 이후 현재의 제목으로 변경된 이 작품은 기존의 리트들보다 훨씬 장엄한 형식을 갖추고 있고, 처음에는 레치타티보로 시작하여 리듬과 멜로디를 빈번하게 바꾸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도입부와 코다를 동반하는 A-B-A 형식에 의한 오페라 아리오소에 가깝다. 산에서 내려온 사나이가 나는 어디에서나 이방인이다 노래하고, 나의 사랑하는 조국이여, 너는 어디에 있느냐라고 탄식하다가 마지막에는 그대가 없는 곳, 그곳에 행복이 있다라는 자조적인 내용의 이 리트는 지상에서의 슈베르트의 자화상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에서는 대부분 ‘행진곡’의 분위기로 묘사되며 자조적인 성찰보다는 긍정적인 전진이 작품의 주요 주제인 듯하다.

 

Wandererfantasie, S.366 (Schubert, D.760, Orch, Liszt)

Mikhail Rudy, piano

Mariss Jansons,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프란츠 리스트가 슈베르트 사후 피아노 작품인 ‘방랑자 환상곡’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S.366의 연주입니다.

고조된 승리의 팡파르, 위풍당당한 끝맺음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작품 가운데 기교적으로 가장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표현의 낙차에 있어서도 엄청난 힘과 지구력을 요구한다. 여기에 혁신적인 형식까지 가세하여 당시로서는 대단히 교양 있는 청중들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더군다나 확장된 형식과 정교한 주제의 발전 및 전개, 혁신적인 순환주제의 채택(당시로서는 최초의 순환주제 작품), 마지막 푸가 악장 배치 등등으로부터 베토벤이 피아노 소나타에서 추구했던 정신을 계승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특성 때문인지 프란츠 리스트는 이 작품을 특히 좋아했는데, 슈베르트 사후인 1851년 이 작품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시 형태의 작품으로 편곡(S.366)했고, 더불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S.653)으로 재차 편곡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오리지널 버전에 대한 얼터너티브 버전 및 마지막 악장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편곡 버전(S.565a) 또한 작곡했다. 아마도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오케스트라적인 음향(위촉자인 리벤베르크가 의도했을 법한)은 피아노 한 대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다고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황제는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track 1~3] Afred Brendel plays Schubert 'Wandererfantasie'

[track 4~5] Elly Ney plays Schubert 'Wandererfantasie'

엘리 네이(1882-1968)는 독일이 낳은 ‘리전더리 피아니스트’입니다. 강인한 타건이 일품인 그녀는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작품 연주에서 독보적이었습니다.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와는 달리 적극적인 나치 추종자였던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무대에서는 쫓겨났으나 86세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1악장 : Allegro con fuoco ma non troppo

Maurizio Pollini, Piano

팡파르와 같은 웅대한 주제가 제시된다. 이후 자유로우면서도 드라마틱하게 조성과 톤을 오가며 만화경처럼 변화하기 시작하지만 본래의 리듬은 변하지 않는다.

2악장 : Adagio

Maurizio Pollini, Piano

일종의 주제와 변주 악장이다. 리트에서의 주제가 단편적으로 인용된 주제가 제시되고, 이후 5번의 변주가 진행되면서 평화로움과 긴장감을 거친 뒤 클라이맥스를 지나고 나면 평화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한 종지부가 다음 악장으로 유도한다.

3악장 : Presto

Maurizio Pollini, Piano

일종의 스케르초로서 첫 악장에 대한 모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 악장의 주제가 반복되며 리듬과 다이내믹, 장식음들을 교묘히 변형시키며 흥겨운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킨다. 조심스러운 분위기의 분위기를 뒤로 하고 즉흥성 높은 코다 부분이 포르티시모를 터뜨리며 다음 악장으로 유도한다.

4악장 : Allegro

Maurizio Pollini, Piano

푸가 악장으로서 연주가의 기교가 최고도로 발휘되는 대목이다. 푸가적인 분위기는 분명 유지되고는 있지만, 베토벤과 같은 엄격한 푸가로서의 모습보다는 연주가의 개인기를 발산하기 위한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화성적 긴장감과 표현적 다이내믹이 음악을 상승시키며, 한껏 고조된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며 위풍당당한 코다로 음악은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