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외국 Pop Music

Till(사랑의 맹세) / Catherine Valente

Veronica Kim 2015. 6. 5. 09:34

Till the moon deserts the sky
Till the all the seas run dry
Till then I'll worship you

저 달이 하늘을 사막으로 변하게 할때까지
저 바다가 말라 버릴 때 까지
내가 당신을 경배하는 그 순간까지

Till the tropic sun turns cold
Till this young world grows old
My darling, I'll adore you

저 열대의 태양이 차가워질 때 까지
이 세상이 사라질 때 까지
내 사랑 당신을 사랑 할 꺼예요

You are my reason to live
All I own I would give
Just to have you adore me, oh, oh, oh

당신은 내가 살아 가는 이유랍니다
내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줄테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했으니까요

Till the rivers flow upstream
Till lovers cease to dream
Till then I'm yours, be mine

강물이 넘쳐 흐를 때 까지
사랑하는 사랑들이 꿈이 멈출 때 까지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 될때까지

You are my reason to live
All I own I would give
Just to have you adore me

당신은 내가 살아 가는 이유랍니다
내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줄테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했으니까요

Till the rivers flow upstream
Till lovers cease to dream
Till then I'm yours, be mine

강물이 넘쳐 흐를 때 까지
사랑하는 사랑들이 꿈이 멈출 때 까지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 될때까지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라틴 음악이란 '라틴 아메리카 음악 Musica Latinoamericana'의 약어이다.

라틴 아메리카란 '라틴계의 민족에 의해 정복된 아메리카'라는 의미로,

앵글로 색슨 민족에 의해 개척된 '앵글로 아메리카' (미합중국)와 대응되는 말인 셈이다.


   라틴인은 원래 로마인의 전신으로 이탈리아의 라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라틴인이라고 불리어졌다.

그 뒤 라틴인의 로마 정복에 의해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가 전 이탈리아에 퍼졌고,

특히 로마제국의 건국과 더불어 유럽 각지에 미친 것이다.


   중남미의 여러 나라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라틴계 민족의 식민지였으므로

라틴 아메리카로 블리며, 그런 이유로 그 음악을 모두 라틴 아메리카 음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중남미의 여러 나라 중엔 프랑스나 독일 또는 영국의 통치구역익 남아 있어서

 스페인 ·포르투갈어 외에 불어나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있기 때문에,

라틴 음악을 분류할 때 나라의 명칭을 따서 부르는 예도 있다.

즉 아르헨티나 음악, 볼리비아 음악, 쿠바 음악 등으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민슥음악이나 특징있는 음악을

세분해서 말할 수 없으므로 각기 음악의 성격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라틴 음악은 각 나라에 따라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라틴 민족 특유의 기질을 살린 직선적이며 강렬한 자극을 주는 리듬 음악,

특히 무곡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라틴 음악의 주무기라 할 수 있는 리듬은

사람의 마음에 생겨나는  자연스런 충동의 움직임을 잘 이용하면서

음의 길이와 셈 여림에 의해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 리듬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동안에 사람의 심리는 리듬에 의해 음악으로 흡수되고

센 바과 여린 박에 의한 장단으로 자연스럽게 율동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리듬의 이런 원리를 생각한다면, 라틴 음악의 절정에 넘치는 리듬과 흥미에 찬

가무적인 분위기의 효과는 실로 육감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를 리듬 음악의 시대라고 하지만, 라틴 음악으로 상징되는 리듬 음악이

이미 오래 전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열광적인 유행의 물결을 탄 일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1954년에서부터 '60년대초에 이르는 한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페레스 프라도 ·에드문도 로스의 맘보, 알프레드 하우제의 콘티넨탈 탱고, 해리 빌라폰테의 칼립소,

 카테리나 발렌테 ·트리오 로스 판쵸스의 라틴 보컬 등 라틴 음악의 영감적인 리듬과 열정이

흥겹게 우리나라를 휩쓸던 시절은 라틴 음악이 무엇인지 어디의 음악인지 아랑곳없다는 듯,

우리는 춤을 추고 싶은 층동과 노래부르고 싶은 자극에 의해 도취되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무렵, 라틴 보컬의 상징적인 존재는 누가 뭐래도 카테리나 발렌테였다.

그녀의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리카르도 산토스 오케스트라의

브래스 섹션과 타악기가 강렬한 인트로를 형성하고,

이어서 매끄러운 스트링의 흐름을 탄 카테리나 발렌테의 개성적인 목소리가

'라라라라'하고 활기차게 노래하는‥‥‥


   강렬한 정감에 넘치는 플라멩코 풍의 창법으로 스페인 말라가 지방의 매흑적인 아가씨들

'말라게니아 Malaguena'를 노래하는 카테리나 발렌테의 그 싱싱하고도 신선한 목소리,

고음부에서 저음부를 극히 자연스럽게 오가는 전이법의 기교라든가

특히 저음부에서의 번쩍이는듯한 아름다움과 볼륨은 한 마디로 어떤 것과도 비길 수가 없는 천하일품이었다.

바로 그 솜씨에 의한 '산들바람과 나 The breez and I' '그라나다 Granada'의 격정에

넘쳐흐르는 듯한 라틴 아메리칸 무드의 신선한 매혹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흘러간 시절의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다.


   이처럼 카테리나 발렌테 하면 '라틴 음악의 여왕'이라고 가장 먼저 인상지어 진다.
 '이스탄불 Istanble' '불의 키스 Kiss of fire'를 비롯한

수많은 라틴 음악 계열의 레퍼터리를 자랑하고 있는 그녀는

용모 자체도 매혹적이다. 등을 뒤덮은 윤기 흐르는 검은 머리가 마치 카르멘의 후예와 같은

강한 체취를 풍겨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국제적인 성가를 드높이는 가수로서 지극히 정통파의 길을 걸어왔다. 

'노래하는 통역'이라 일컬어지는 카테리나 발렌테는 1931년 1월 파리에서

이탈리아계 어머니와 스페인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자그만치 11남매 중 열번째 딸이었다. 카테리나 발렌테의 부모는 모두 연예인이었다.

 아버지는 코미디언, 어머니 마리아 발렌테는 가수였기 때문에 카테리나 발렌테는

어렸을 때 부터 별로 힘들이지 않고 운명의 손에 이끌려 노래의 세계로 간듯하다.


    카테리나 발렌떼가 연예 가족의 일원으로 처음므로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보인 것은 5세 때,

그녀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하였다.

카테리나 발렌테의 귀염성스런 눈동자, 활기에 찬 춤, 비상한 노래 솜씨는

노래하는 귀여운 천사로서 순식간에 파리의 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소녀 카테리나 발렌테는 가족과 함께

독일 ·이탈리아 . 스페인 . 러시아 등지의 무대를 순회하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가수들 중에서 어학의 천재라고 하면 곧 카테리나 발렌테가 연상되지만

영어·불어·독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 심지어 러시아어까지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국제적인 가수라는 의미에서 그녀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역 가수들 중에서는 비키나 나나 무스쿠리가 독어 ·불어 ·영어로 노래하지만, 라틴 ·샹송 ·재즈 ·팝송 등

각국의 히트곡을 그 나라 언어로 멋지게 불러 제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최초의 국제적 대중 가수로

카테리나 발렌테의 이름을 꼽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소녀 시절의 방랑의 예인 생활은 평생토록 그녀의 노래 생활 위에 비치는 화사한 태양의 축복이 되었다.

카테리나 발렌테의 육감적인 분위기에 넘치는 스페인풍의 창법,

델리커시한 향기 그윽한 샹송, 또 재즈 보컬의 멋진 필링 등 그녀의 풍부하고 빛나는 재능이야말로

노래하는 통역으로서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카테리나 발렌떼의 성공의 가도에는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어 그녀가 대스타가 되기까지에는 꽤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였다.

 그녀가 스톡홀름의 어느 작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을 무렵, 이 이름 없는 나이트 클럽의 젊은 여가수를

 당시 서독의 인기 밴드 리더였던 쿠르트 에델하겐이 발견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에델하겐 밴드의 전속가수가 되었고,

그무렵 서독 주둔 미군을 상대로 한 밴드의 위문공연에 참가하여 Gl들 앞에서 노래하며 춤추게 되었다.


그때 카테리나 발렌테는 23세, 바야흐로 꽃이 화려하게 만개된 나이로

Gl들 사이에서 전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마침내 레코드계의 프로포즈를 받기에 이르렀다.


  1954년 그녀는 당대 최고의 인기 악단 리카르도 산토스와 콤비로 '말라게니아' '산들바람과 나'

'그라나다' 등 일련의 라틴 음악을 노래한 레코드를 발표함으로써 마침내 독일 경음악단의 스타가 되었다.

 원래 1950년대의 독일 경음악계는 아메리칸 재즈의 매력을 도입해서, 오래되고

독자적인 그들 자신의 음악 전통속에 새로운 감각을 채택하는 것을 특색으로 하고 있었다.


    바로 이무렵에 등장한 카테리나 발렌테의 노래는 소위 클라식의 리트 Lied적인 스타일에서 

 샹송풍의 콘티넨탈한 무드, 전후 독일에서 널리 애호된 미국의 팝송적인 감각을 골고루 포함하는

폭넓은 영역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독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카테리나 발렌테는 서독 대중 음악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남아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녀가 진정으로 자랑으로 여기는 것은 라틴 아메리칸 무드로 '말라게니아'와 같은

스페인의 환상을 노래해서 그녀의 오른쪽에 설 만한 가수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의 데뷔곡 '말라게니아'가 미국에서 대히트한 것은 1955년,

 그 뒤 영국의 데카 레코드로 이적, 여기서 또 하나의 대히트곡인 '정열의 꽃 Passion flower'을

1959년 여름에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인기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당시 그녀는 28세, 인생의 원숙함이 감도는 한 사람의 여인을 노래하면서

전세계의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던 것이다.

강렬한 여인의 정염을 한평생을 통해 일관해 온 길고 긴 가수 생활,

카테리나 발렌테의 노래는 여전히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 나는 새로 구입한 레코드를 정리하다가 문득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는 듯한,

한 나이 든 여인의 사진을 보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카테리나 발렌테,

나우 Caterina Valente, now'라는 타이틀 아래 수줍은 듯한 미소를 머금은 선한 초로의 여인의 모습,

 그것은 이미 예전의 미모를 잃어버린 여인 카테린나 발렌테 였던 것이다.


    라틴계 여성 특유의 육감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전성시대의 카테리나 발렌테의 미모가 

강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만큼, 잔주름이 얼굴에 새겨져 어딘가 초췌하고

실제 나이보다 더욱 쇠잔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도저히 현실로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황금의 시절 Goldne Tage'을 독일어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역시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노래로써 일생을 관철해 온 여인의

보석과 같은 존귀함이 넘쳐흐르는 것이 아닌가.


   









'음악 > 외국 Pop 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me A little Closer / 리브  (0) 2015.06.07
I Went To Your Wedding / Patti Page  (0) 2015.06.05
What Am I Supposed To Do / Ann Margaret   (0) 2015.06.03
"We found love"  (0) 2015.05.28
Bridge Over Troubled Water /  (0) 201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