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 웃음 보따리/한국 보따리

아내는 외계인

Veronica Kim 2011. 4. 11. 16:22

 

<아내 외계인(外界人)>

 

우리 부부는
 40년이 채 안된 동안 부부의 연()을 맺고 여태껏 살고 있다.
그렇게 긴 세월을 부대끼고 살았으면서도 서로 다른 점이 너무나 많고 또
잘 고쳐지지도 않고 있다.
오늘도 집사람이 옷을 벗어 놓은 걸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옷들이 거머리 장가보내듯 홀라당 뒤집혀 방구석에 나돌고 있다.
몇 십 년 동안 잔소리를 해도 아무 소용도 없다.
이젠 늙어서 시큰둥도 하지 않는다.
아마 뉘 집 개 짖는 정도로 생각을 하나보다.
이젠 제 버릇 개 못 준다를 넘어 태생적인 불변의 본능인가 보다.
 
어디 그것뿐이랴? 화장실에선 나와 다른 점이 부지기수이다.
나는 치약을 짤 때 꽁무니부터 말아 올리면서 짜서 쓴다.
아내는 퉁퉁한 치약 배때기부터 꾹 눌러 짜서 쓴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오랜 동안 티격태격했지만
하다 지쳐 아예 치약 짜 쓰는 도구를 동원했지만 여전히 그 타령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해결 방법을 조언 받았다.
치약 두 개를 쓰는 것이다. 각자 치약을……. 40년 만에 해결 본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말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부부는 틀림없이 이심이체(二心異體)이다.
화성인(火星人) 금성인(金星人)처럼 화금(火金)은 상극(相剋)이 아닌가?
어디 그것뿐인가? 나는 화장지를 앞으로 돌게 거는데, 집사람은
어김없이 뒤로 돌게 건다.
하긴 앞으로 돌 건 뒤로 돌 건 뽑아 쓰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뒤로 걸면
화장지 덮개에서 소리가 요란하다.
그래서 집사람은 두 번 손이 가게 만드는 귀신이다. 수건만도 그렇다.
나는 수건을 쓰고서 반듯하게 펴서 걸어 놓는데, 집사람은 대충 철저히 쓴 대로 드리운다.
 
변기 덮개만도 그렇다. 엉덩이를 받치는 덮개는 항상 올려놓는 데 맨날 그 타령이다.
상생(相生)은 눈곱만치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참으로 쩨쩨하고 소갈머리가 없고 소인배(小人輩)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날마다 부딪치는 사소한 문젯거리도 혹 가다 다툼거리로 등장한다.
밥상만 해도 그렇다. 나는 나물 채소 쌉싸래한 미나리, 도라지, 고사리 등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들척지근한 햄, 소시지, 어묵 등을 좋아한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주로 요리하기 때문에 나는 개밥에 도토리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아들은 식성은 제 에미를 쏙빼담고, 딸은 내 식성과 동창이다.
무언가 태생적으로 다른 DNA 있는갑다.
 
우리 둘이는 안경을 썼다. 시력이 나쁜 것이 자랑거리가 될 리 없다.
근데 안경의 간수 태도가 사뭇 다르다. 나는 안경을 되도록 일정한 장소에 벗어 놓는다.
그러나 아내는 아무데나 벗어 놓는다. 그렇게 안경을 잘 보관하라고 닦달을 해도 막무가내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못 찾아 투덜거리는 여자가 된다.
 
시장 보는 것만도 그렇다.
나는 제 발 살 것을 메모해 가지고 사오라고 신신당부하지만 들은 척도 안 한다.
마치 시장 보는 것은 자기의 고유 권한이라는 듯이…….
그렇기 때문에 한두 가지 빠뜨리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러니 시장으로 다시 발걸음질한다. 일 년에 딱 두 번! 메모해간다.
설날과 추석 즈음이다.
 
감성도 완연히 다르다. 언젠가 늦 가을날 아침에 일이다.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느티나무 밑에 세워둔 검정색 내 차 위에는
어젯밤 가을비에 함께 떨어진 짙노란 느티나무 단풍잎들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여보, 아름답지! 한폭의 가을 그림 같지 않아?”

아름답긴 뭐가 아름다워요? 치우기만 나쁘지.”
하며 시큰둥하고 마뜩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집사람과 나와의 다른 점을 말하라면 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제일 신경질 나게 다른 점은 잠자는 것이다.
아내는 대개 머리만 바닥에 닿으면 금세 코를 골며 잠에 떨어진다.
잔 근심이 많고 신경이 예민한 나는 고시랑고시랑하는데 말이다.
천장의 무늬만 바뀌어도 잠을 못 자는데 말이다.
나와 달리 전천후 잠을 잘 자는 그녀를 보면 조물주의 불평등에 투덜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기를 한 40, 서로 용케 참고 살아왔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어느 모임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닮은 부부로
뽑힌 적이 있으니…….
이것도 일종의 착시 현상일 것이다.
살다보면 서로 닮아가는 점도 많아질 것이다.
서로 팔짱을 끼듯이, 서로 공유(共有)하는 가치들이 교집합 부분처럼 넓어져만 간다.
고혈압, 백내장, 건망증 등 닮지 말아야 할 것은 더더욱 닮아간다.
또 쥐꼬리만한 서로 위하는 마음도…….
 
오늘은 체크카드를 찾느라고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결국 분실한 것 같아 신고하고 나니,  어제 결재한 한의원에서  카드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다.
 
물과 불은 오행상(五行上) 상극(相剋)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는 보완적인 존재다. 물의 분자식은 HO이고, 불은 O가 없으면 그 존재 가치를 잃는다.
남편과 아내도 그런 관계이다. 아무리 상극이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존재이다.
누군가 그랬다. 만남은 하늘의 인연이고 관계는 땅의 인연이라고…….
 
그래도 우리 집사람은 외계인(外界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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